쿠팡 없으면 나라 망하나?
쿠팡 로켓배송 트럭이 우리 집 앞에 멈춰 설 때마다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마치 이 트럭이 내 삶을 떠받치는 산소 호흡기라도 되는 양 착각하는 내가 개돼지가 아니면 뭔가. 당일배송이 무슨 석유나 반도체라도 되나? 쿠팡이 없어지면 당장 나라가 망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하루이틀 느린 배송에 잘만 살던 내가, 이제는 쿠팡 없이는 못 살겠다고 호들갑을 떠는 한심한 꼴이라니. 쿠팡 없다고 내가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 꼭 쿠팡이 인류를 구원할 하이테크놀로지 기술 회사라도 되는 양 굴고 있으니 스스로 한심해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결국 “쿠팡 없으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행동하는 나는 자칭 개돼지다. 편한 맛에 길들여져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포기한, 남이 던져주는 당근만 쫓는 개돼지 말이다.
개인정보 다 털렸는데 수사는 셀프로?
쿠팡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터뜨렸다는 소식에도 나는 한동안 둔감했다. 회사는 전(前) 직원이 고객 3,370만 명의 개인정보에 접근했지만 실제 유출해 저장한 정보는 약 3000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유출된 데이터가 외부로 공유된 증거도 없다고 강변했다. 참 뻔뻔하지 않은가? 3천만 명 넘는 고객 정보가 털렸는데도 “고작 3000건 뿐”이라며 피해 규모를 축소해 발표하니, 한국 정부 조사단이 “쿠팡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고 코웃음치는 것도 당연하다. 실제로 정부는 이름과 이메일 기준 최소 3,300만 건 이상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보고 있고, 주소나 주문 내역까지 포함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유출 범위는 아직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쿠팡 혼자 셀프 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면죄부를 주려 하니 어이가 없다.
더 가관인 것은 쿠팡의 태도다. 사건이 불거지자 쿠팡은 자체 조사를 했다며 결과를 서둘러 발표했지만, 정작 이는 정부의 민관합동조사단과 협의되지 않은 일방적 조사였다. 쿠팡 임원들은 국회 청문회에 나와 “국정원의 지시로 조사했다”느니 정부 탓을 하는 발언을 늘어놓았다. 이에 국정원은 “지시한 적 없다”며 정면 반박했다. 잘못은 자기들이 해놓고, 수사는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책임은 남에게 떠넘기려는 그 태도에 분노가 치민다. 심지어 정부가 사고 조사에 필요한 자료 보존을 명령했는데도, 쿠팡 홈페이지 접속 로그 5개월치가 통째로 사라졌다고 한다. 증거 인멸 의혹까지 자초한 꼴이다. 결국 경찰이 86명 규모의 특별 수사 TF팀까지 꾸려 쿠팡의 개인정보유출 사건과 각종 의혹을 본격 수사하게 됐다니, 사태를 이 지경으로 키운 책임을 쿠팡은 통감해야 한다.
쿠팡 김범석 의장은 끝내 국회 청문회에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회가 부르는데도 본사는 미국이라며 나 몰라라 한 걸 보니, 애초에 한국 소비자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 결과 국회는 쿠팡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까지 추진하고, 정부도 지배구조 문제나 노동환경, 탈세 의혹까지 탈탈 털 태세다. 쿠팡 측의 안일하고 거만한 대응이 오히려 자충수가 되어, 현재 고객들은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고 미국 투자자들까지 “쿠팡이 정보를 늑장 공개해 손해봤다”며 소송을 걸 지경이다. 이렇게 사방에서 난리가 났는데도 쿠팡은 한사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과 시간 끌기로 일관하고 있다. 그 사이 나는 어땠냐고? 한때 분노했지만 곧 금붕어처럼 잊어버리고 여전히 쿠팡 앱을 뒤적거리고 있으니, 스스로 개돼지가 맞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5만 원 쿠폰 몇 장에 기억 상실
쿠팡은 개인정보를 털린 3천만이 넘는 고객들에게 달랑 5만 원 쿠폰 몇 장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들었다. 한 사람당 5만 원씩, 그것도 현금이 아닌 쿠팡에서만 쓸 수 있는 구매이용권으로 준다는 발표를 들었을 때, 코웃음이 나왔다. 피해자 한 명당 5만 원어치 쿠폰이라니, 전체 규모가 1조6,850억 원이라고 숫자는 그럴싸하게 키웠지만, 결국 그 쿠폰 쓰려면 다시 쿠팡에 들어와 물건 사라는 얘기 아닌가. 보상을 가장한 마케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쿠팡은 “탈퇴한 고객한테도 다 준다”고 생색냈지만, 정작 탈퇴한 사람 연락처는 또 어디서 구해 보냈을까? 한 손으론 개인정보를 유출하고, 다른 손으론 유출 피해자들까지 다시 끌어모아 장사속을 챙기니, 이런 걸 두고 먹이 주며 길들이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더 황당한 건 쿠팡이 이런 쥐꼬리 보상조차 자기 돈으로 다 메꿀 생각도 안 했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 이전에 쿠팡이 들어둔 사이버보험의 보상 한도가 고작 10억 원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3,370만 건의 개인정보를 털릴 동안 대비책으로 10억짜리 보험 들고 있었다니, 애초에 대규모 사고에 대한 진지한 대비나 피해 보상 의지가 있었을 리 없다. 그러니 5만 원 쿠폰으로 퉁치려는 발상을 했겠지.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푼돈 보상에 혹하는 내 자신이다. 쿠폰 몇 장에 눈이 뒤집혀서 “그래도 5만 원이면 꽤 되네” 하고 좋아할 법한 내가 부끄럽다. 실제로 온라인엔 “이 정도면 괜찮네”라는 반응도 보였다는데, 그러고는 쿠팡에 다시 로그인해서 쇼핑을 시작하겠지. 이렇게 금붕어 기억력으로 분노를 잊고 다시 지갑을 여니 쿠팡이 우리를 개돼지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화를 내봤자, 결국 내가 그 쿠폰 쓰겠다고 다시 쿠팡에 머리를 조아릴까 두렵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 욕을 퍼부으면서도, 정작 결제는 또 내가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쿠팡은 배 불리면서 날 비웃을 것 아닌가.
쿠팡은 필수가 아니다
결국 이 글을 쓰는 내내 결론은 하나로 모아진다. 쿠팡은 필수가 아니다. 쿠팡 없이도 세상은 돌아간다. 그런데도 언론 일부와 사람들은 마치 쿠팡이 사라지면 대한민국에 사회적 혼란이라도 올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정말 우스운 일이다. 쿠팡이 무슨 글로벌 최첨단 기업이라 나라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것도 아니고, 국가 안보와 직결된 방위 산업체도 아니다. 쿠팡이 문 닫는다고 당장 우리가 생필품을 구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같은 물건, 다른 온라인 쇼핑몰도 많고, 하루나 이틀 정도 늦게 받는다고 죽지 않는다. 내가 조금만 부지런해지면 될 일이고, 설령 쿠팡이 사라지더라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비슷한 서비스를 못 내놓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나는 이토록 쿠팡에 목매며 스스로를 비하하고 있을까?
솔직히 인정한다. 나는 쿠팡의 편리함에 길들여져 스스로 개돼지임을 자처하는 처지가 되었다. 주말도 밤낮도 없이 일하는 건 나인데, 정작 그 노동의 대가를 받아 배부르게 사는 건 쿠팡이다. 그들은 내 개인정보를 홀랑 새나 나가게 만들고도 뻔뻔하게 굴고, 50만 원도 아닌 5만 원 쿠폰으로 퉁치려 한다. 그런데도 나는 “어쩔 수 없어, 당일배송은 포기 못 해”라며 그들의 밥줄을 쥐여주고 있다. 이런 내가 개돼지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쿠팡은 우리를 속이고 우롱했지만, 정작 속아주고 이용해주는 것도 우리다. 무시당해도 결제, 희롱당해도 결제, 개돼지 취급당해도 결제… 이 악순환의 굴레를 끊어내지 못하면 앞으로도 달라질 건 없다. 쿠팡이 정말로 우리 삶에 없어선 안 될 필수재라는 거짓 신화를 깨부수지 않는 한, 나는 영원히 개돼지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겠나? 쿠팡이 뭐라고, 그깟 편리함 조금 잃는 게 뭐 대수라고,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비하하며 살 필요가 있나 말이다. 쿠팡이 나를 개돼지로 보는 건 그들의 잘못이지만, 개돼지로 남아 있는 건 순전히 내 선택이다. 이제는 그 굴레를 끊고자 한다. 쿠팡 없이도 우린 살아남는다. 쿠팡은 수많은 옵션 중 하나일 뿐, 결코 우리의 필수품이 아니다. 그러니 더 이상 쿠팡 없인 안 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자. 나부터 개돼지 탈출에 나설 때다. 오늘 당장 쿠팡 앱을 지우고, 머리와 배를 쓰다듬어줄 진짜 주인은 나 자신임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개돼지였다. 그러나 더 이상 쿠팡의 개돼지로 살지 않겠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