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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교류위원장이 된 영원한 딴따라

예술인 박진영: 90년대 가요계를 휩쓴 스타

박진영은 1994년 데뷔 앨범 〈Blue City〉와 타이틀곡 〈날 떠나지마〉로 가요계에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 특유의 펑키(Funk)한 리듬과 소울풀 한 보컬로 〈엘리베이터〉, 〈그녀는 예뻤다〉, 〈허니(Honey)〉, 〈난 여자가 있는데〉 등 숱한 히트곡을 탄생시키며 199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자리매김했죠 . 무대 위에서 반짝이 의상과 투명 비닐 바지까지 소화하는 그의 파격 퍼포먼스는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당시 “딴따라”라 불리던 연예인의 길을 택한 박진영은, “12월만 되면 돌아오는 딴따라”라는 자기소개마저 유쾌하게 즐길 만큼 무대 체질이었습니다.

이후 박진영은 가수 활동과 병행해 프로듀서로 변신했습니다. 1997년 그는 태홍기획이라는 작은 기획사를 차려 신인 발굴에 나섰고, 2년 뒤 아이돌 그룹 god(지오디)를 데뷔시켜 메가 히트를 기록합니다 . 특히 god의 음악은 국민 그룹이라 불릴 정도로 사랑 받으며, 박진영을 ‘히트 메이커’ 프로듀서 반열에 올려놓았죠. 박진영 본인도 예능 프로그램과 시상식 무대에서 여전히 노래하고 춤추며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춤추는 영원한 딴따라”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가수로서 쌓은 화려한 이력과 무대 감각은 그를 언제까지나 에너지 넘치는 아티스트로 남게 합니다.


사업가 박진영: JYP 엔터테인먼트의 성공과 도전

박진영은 JYP 엔터테인먼트의 설립자이자 최대 주주로,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까지 입증한 인물입니다 . 2001년 자신의 이니셜을 딴 JYP로 회사명을 변경한 그는, 2000년대 들어 비(Rain), , 노을 등 실력파 가수들을 키워냈고 원더걸스, 2PM, 미쓰에이, 2AM 등 K팝 2세대 아이돌 그룹을 연이어 성공시켜 SM·YG와 함께 가요 기획사 ‘빅3’ 시대를 열었습니다 . 특히 원더걸스는 2009년 아시아 걸그룹 최초로 미국 빌보드 Hot 100 차트에 진입하며 K-Pop의 글로벌 잠재력을 증명했고 , JYP의 남자아이돌 2PM은 독보적 퍼포먼스로 한류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사업가로서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한때 간판 스타였던 비가 2007년 독립하면서 JYP는 위기를 맞기도 했고 , 원더걸스 미국 진출 과정에서 멤버 교체와 성과 부진을 겪으며 시행착오를 맛보았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수백억 잃었지만 몇 천억짜리 지혜를 얻었다”는 그의 고백처럼, 글로벌 도전 속 실패도 경험한 것이죠. 또 2PM의 멤버 문제 등으로 홍역을 치르며 엔터 사업의 위험 관리를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 그러나 박진영은 좌절 대신 혁신을 선택했습니다. 체계적인 JYP만의 트레이닝 시스템‘지역별 맞춤 아이돌’ 전략으로 일본 걸그룹 니지유(NiziU), 중국 그룹 보이스토리(Boy Story) 등을 기획하며 현지화를 추진했고 , 트와이스(TWICE)스트레이 키즈 등 3·4세대 아이돌을 성공시켜 회사의 전성기를 이어갔습니다. 이러한 성과 덕분에 JYP 엔터테인먼트는 코스닥 상장에도 성공했고, 박진영은 지분 15%의 최대주주 겸 CCO(Chief Creative Officer)로서 기업가치를 수천억 원대로 키워냈습니다 .

박진영의 사업가로서 성공 비결은 그만의 뚜렷한 색깔과 소통입니다. 그는 작사·작곡부터 안무, 패션 컨셉까지 직접 관여하며 아이돌 브랜드를 만들었고 , “JYP”라는 프로듀서 시그니처 사운드를 노래 인트로마다 넣어 브랜드를 각인시켰습니다. 또한 ESG 경영아티스트 별 전담 조직 운영 등 시대에 맞는 기업 운영을 선도하며 , 엔터업계 최초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모범을 보이기도 했죠. 실패를 교훈 삼아 거듭 진화해온 사업가 박진영의 행보는, 이제 대한민국 대중문화 산업 전체를 이끌 정책 자문으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대중문화교류위원장 박진영: 새로운 도전과 역할

“가수 박진영”에서 이제 “박진영 위원장”이라 불리게 된 현재, 그는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공동위원장(비상근)으로 활동 중입니다 . 올 9월 이 위원회의 첫 출범과 함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최휘영 장관)과 공동 수장을 맡은 박진영 위원장은, 국내 여러 부처 차관들과 HYBE·SM·YG 등 업계 대표 26인이 참여하는 민관 합동 위원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 처음 제안을 받은 것은 3개월 전. 그는 “상근직(전일제)으로 제안받았을 때 거듭 고사했다”고 합니다 . 가수 활동과 방송 스케줄이 빡빡한데 정식 공무원처럼 일할 순 없다는 현실적 고민 때문이었죠. 그러나 대통령 비서실에서 그의 우려를 하나씩 해결하며 설득했고, 결국 “이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박진영은 털어놓았습니다 . 장관급 대우도 따라왔지만 그는 “월급도 의전도 필요 없다”며 모든 장관급 예우를 사양했다고 합니다 . 말 그대로 명예직으로 순수한 사명감만을 안고 위원장을 맡은 셈입니다. 박진영은 MBC 예능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이러한 비화를 밝히며 “K-Pop 산업을 위해 회사 차원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해보려고 결심했다”고 수락 배경을 설명했는데요 , 엔터테인먼트 기업인으로서 한계를 느낀 부분을 공적 영역에서 풀어보고 싶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위원장으로 임명된 뒤 박진영의 행보는 빠르게 이어졌습니다. 10월 1일 위원회 출범식에서는 이재명 대통령과 나란히 포토부스에서 ‘인생네컷’ 기념사진을 찍는 파격(?)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이 갑자기 커다란 손하트를 그려 보여주자, 박진영 위원장은 웃음을 터뜨리며 현장을 화기애애하게 만들었죠 . 며칠 후에는 APEC 정상회의 국빈만찬에 문화계 대표 자격으로 참석해, 국가 원수들 앞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 한편으로는 본업도 소홀히 하지 않아, 위원장 임명 직후 예정돼 있던 대통령과의 일정조차 “예능 프로그램 녹화가 잡혀 있다”며 양해를 구하고 방송을 택한 일화도 공개했습니다 (대통령 역시 “방송으로 볼게요”라고 웃으며 이해해줬다고 하네요) . 공직자 박진영연예인 JYP의 두 역할을 능숙하게 병행하는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주었습니다.


박진영 위원장의 비전: K-컬처 세계화를 향한 행보와 계획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박진영은 K-컬처 세계화를 위한 야심찬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K-Pop 전용 공연장을 건설하고, 코첼라를 이길 글로벌 페스티벌을 만들겠다”는 두 가지 약속까지 공언했습니다 . 국내에 대규모 K-Pop 공연 인프라를 구축해 관객들의 편의성을 높이고, 세계 각국의 팬들을 한국으로 불러모을 수 있는 초대형 페스티벌을 개최하겠다는 구상입니다 . 실제로 그는 전 세계 7개 도시에 K-컬처를 체험할 수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 겸 ‘경험의 장’을 마련하고, 2027년부터 매년 12월 한국에서 ‘페노미논(Fanomenon) 페스티벌’ 및 시상식을 열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 페노미논은 팬(Fan)과 현상(Phenomenon)의 합성어로, 전 세계 팬덤이 만드는 문화 현상을 축제로 승화시키겠다는 의미라 합니다. 이 페스티벌은 2028년부터는 미국, 유럽 등 세계 주요 도시 순회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어, 말 그대로 ‘코첼라를 이기는’ K-컬처 축제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입니다 .

또한 박진영 위원장은 공연장 주변 인프라 확충의 중요성도 강조했습니다. 한국에는 아직 관객 2만~3만 명을 수용할 수준의 전문 공연장이 드물고, 공연장 주변에 먹거리·즐길거리가 부족해 관람객들이 불편을 겪는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것입니다 . 공연 전후로 쇼핑과 관광까지 한 장소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화 콤플렉스형 공연장을 지어 체류형 관광을 유도하겠다는 구상이지요. 이는 K팝 콘서트의 해외 원정 관객을 국내로 더욱 끌어들이고,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 이러한 박진영의 제안들은 그의 현장 경험에서 우러난 실질적인 아이디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30년 넘게 가수 겸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국내외 공연 문화의 허점과 수요를 정확히 체감해왔기에 가능한 통찰입니다. 정부도 박진영 위원장의 아이디어에 힘입어 “K-컬처 300조 원 시대, 문화강국 실현”이라는 비전을 세우고,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 박진영은 민간위원들과 함께 대중문화 교류 전략 수립과 각종 국제 문화행사의 기획에 참여하며, K-컬처의 소프트 파워를 극대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양한 경험이 위원장 역할에 미치는 영향

박진영이 예술인·사업가·위원장으로서 쌓아온 다채로운 경험은 그를 어느 누구보다 입체적인 리더로 만들고 있습니다. 먼저 가수 출신 위원장이라는 점은 큰 강점입니다. 세계 무대에 직접 올라 수많은 관객을 만나본 만큼,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문화 교류 정책을 고민할 수 있습니다. 가령 정부 주도의 해외 공연 추진이나 예술인 복지 정책을 논의할 때 현장의 어려움과 필요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겠지요. 또한 히트곡 메이커 겸 프로듀서로서의 감각은 한류 콘텐츠의 트렌드를 이끌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됩니다. 박진영이 직접 발굴·양성한 아이돌 그룹들의 성공과 시행착오는 K-Pop 산업 구조에 대한 살아있는 데이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K-드라마, K-게임, K-웹툰 등 다른 대중문화 분야와의 협업 방안까지 폭넓게 제시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중문화교류위에는 음악 뿐 아니라 게임, 웹툰, 영화, 뷰티, 식품 등 각계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는데 , 박진영은 이들과 공동의 언어로 소통하며 산업 간 시너지를 이끌 적임자라는 평가입니다.

CEO 출신 공직자라는 이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박진영은 수년간 기업을 운영하며 쌓은 경영 노하우글로벌 비즈니스 인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정부 정책을 민간 기업과 조율하거나 해외 기관과 협력할 때 큰 자산이 됩니다. 실제로 그는 미국 진출 당시 쌓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월드스타 비와 원더걸스의 해외 활동을 지원했고 , 이러한 국제 감각이 이제는 국가 차원의 문화 외교 자산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아가 실패를 딛고 성공을 일군 스토리텔러로서, 후배 예술인과 스타트업들에게 귀감이 되는 조언자가 될 수도 있겠지요. 한편, 연예계 경력 덕분에 뛰어난 소통 능력유머 감각을 지닌 점도 공직자로서는 이례적인 장점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통령과의 즉석 셀카 이벤트나 방송에서 솔직담백하게 소신을 밝히는 모습은,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문화 정책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술과 경영 현장을 모두 아우른 박진영의 경험치는 대중문화교류위원장으로서의 그의 활동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새로운 융합 리더십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영원한 딴따라’의 정치 도전 – 유쾌한 변화

과거 무대에서 “JYP!”를 외치며 춤추던 박진영이 어느덧 장관급 공직자가 되었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놀랐습니다. 스스로도 “30년 간 정치 성향과 신념을 밝힌 적 없었다”고 말할 만큼 정치와 거리를 두었던 그였기에 더욱 그랬죠 . 그러나 박진영은 이번 도전을 받아들이며 공개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혔습니다. 그는 “정부 개입이 없으면 자본가에게 유리하니 진보 정책이 필요하고, 과도한 복지는 자본 유출을 부르니 보수 정책도 필요하다”균형감을 강조했습니다 . 그리고 **“나는 어느 진영에도 속할 생각이 없다. 진보 진영도 보수 진영도 아닌 **박진영이라고 선언했죠 . 말장난 같으면서도 묵직한 이 한마디는, 그가 특정 이념보다 문화 발전산업 생태계 자체를 위해 일하겠다는 다짐으로 들립니다. 실제로 박진영은 위원장 수락에 대해 *“혼자라면 괜찮지만 가족이 있어 걱정됐다”*며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부담도 토로했지만 대중문화계와 국가를 위한 길이라 판단해 용기를 낸 것입니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영원한 딴따라의 정치 진출”*이라는 흥미로운 반응이 나옵니다. 딴따라란 표현에는 한때 연예인을 폄하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지만, 박진영은 오히려 이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쿨하게 받아들이며 예술인의 자존심을 지켜온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정책 입안자의 위치에서 딴따라의 가치를 증명하려 하고 있는 것이죠. 이는 문화계 인사로서 공적 무대에 선 새로운 사례로, 대중문화와 정치의 경계를 허무는 상징적 장면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도 배우나 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이 정계에 입문한 적은 더러 있었지만, K팝 프로듀서 출신이 국가 정책에 관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덕분에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자체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평소 문화정책에 둔감했던 젊은 세대까지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박진영이 무슨 일을 하나” 바라보는 눈길이 곧 대한민국 문화 외교의 성공 가능성을 함께 지켜보는 응원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관객을 열광시키던 엔터테이너 박진영은 이제 정책 무대에서 세계를 향해 한국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문화 외교관 박진영으로 변신했습니다. 물론 그는 여전히 가요 프로그램에서 신곡 무대를 선보이고 예능에서 재치를 뽐내며 딴따라 본능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이중 매력이 박진영만의 강점일 것입니다. 한 손엔 마이크를, 한 손엔 정책 보고서를 들고 분주한 그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유쾌하죠. 진보도 보수도 아닌 박진영, 영원한 딴따라 박진영의 새로운 도전에 대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과거의 영광과 실패를 양분 삼아, 현재의 사명을 즐기며, 미래의 비전을 향해 달려가는 박진영 위원장. 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꿈꾸는 딴따라의 한계는 없다!” 그리고 그 끝없는 도전이 있기에, K-컬처의 내일은 더욱 밝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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